기독교의 역사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은 단순히 교회의 부패를 바로잡는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고, 그 중심에는 '구약 성경의 권수'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1. 낯선 손님들의 등장: 외경(Apocrypha)의 존재
중세 시대까지만 해도 유럽의 교회는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a)'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39권 외에도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서와 같은 7권의 책들이 더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책들은 초기 기독교 시절부터 전례에서 읽혀왔고 신학적 근거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유대인들의 히브리어 성경에는 들어있지 않은 '낯선 손님'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2. 루터의 결단: "원천으로 돌아가라(Ad Fontes)"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마르틴 루터는 신학의 절대 기준을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 두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다면 무엇이 진짜 성경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됩니다.
루터는 인문주의 정신을 따라 성경의 원천인 히브리어 본문(맛소라 본문)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들, 즉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책들을 '정경'의 지위에서 내려놓기로 결심합니다. 1534년 루터 성경을 펴내며 그는 이 책들을 별도의 섹션으로 분리하고 "성경과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지만, 읽어서 유익하고 좋은 책들"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외경'의 시작이었습니다.
3. 논쟁의 핵심: 구원과 교리
단순히 권수만 줄어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과정에는 깊은 신학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외경인 마카베오 하권에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이는 루터가 비판했던 면죄부 판매나 연옥 교리의 근거로 쓰였습니다. 루터에게 이런 책들은 복음의 핵심인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가로막는 장애물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4. 가톨릭의 반격: 트렌토 공의회
프로테스탄트들의 이런 파격적인 행보에 로마 가톨릭교회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546년, 가톨릭은 트렌토 공의회를 통해 전통적으로 내려온 46권의 목록을 '제2정경'이라 부르며 이들의 정경성을 공식화했습니다. 만약 이를 거부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강력한 문구까지 덧붙였습니다. 이로써 성경의 목록을 둘러싼 가톨릭과 개신교의 길은 완전히 갈라지게 됩니다.
5. 칼뱅과 청교도: "완전한 분리"
루터가 외경을 '읽으면 좋은 책'으로 곁에 두었다면, 요한 칼뱅과 이후의 청교도들은 더욱 엄격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감이 확인되지 않은 글이 성경과 섞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1647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외경을 "다른 인간적인 저작물과 다를 바 없다"고 선언하며, 예배와 교리에서 완전히 배제했습니다.
에필로그: 39권이 우리에게 남긴 것
오늘날 우리가 읽는 구약 39권은 이러한 치열한 신학적 고민과 역사적 풍파를 거쳐 우리 손에 들려졌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양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짜 음성’을 인간의 전통으로부터 구별해내려 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