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약성경의 역설: 사라진 바실레이아, 등장한 에클레시아
신약성경을 통계적으로 분석해 보면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4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입을 통해 선포된 핵심 메시지는 단연 ‘바실레이아(Basileia, 하나님 나라)’입니다. 복음서에서 120회 이상 압도적으로 사용된 이 단어는 예수 사역의 시작과 끝이었습니다. 반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인 ‘에클레시아(Ekklesia, 교회)’는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 마태복음 16장에 단 두 번 언급될 뿐입니다.
하지만 바울 서신으로 넘어가면 전세가 역전됩니다. 바실레이아의 빈도는 급격히 줄어들고, 에클레시아가 약 60회 이상 등장하며 신학적 중심 주제로 부상합니다. 이는 복음이 유대 지경을 넘어 이방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공동체’로서 교회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2. 현재 한국 교회의 현주소: 에클레시아에 갇힌 바실레이아
오늘날 한국 교회는 바울 이후 강조된 ‘에클레시아’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강조점이 지나치게 ‘제도’와 ‘조직’, 그리고 ‘개교회 중심주의’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의 강조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공간 중심: ‘하나님 나라’라는 통치적 개념보다 ‘예배당’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집중합니다.
내부 지향: 세상 속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보다 교회 내부의 조직 관리와 성장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제도적 안정: 역동적인 성령의 운동성보다 교단 법과 제도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에클레시아 편향’은 자칫 교회를 세상과 분리된 섬으로 만들고, 예수님이 강조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공공성과 역동성을 상실하게 할 위험이 있습니다.
3. 미래의 방향: 바실레이아를 실현하는 에클레시아로
성경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정한 방향은 에클레시아가 바실레이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클레시아)가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를 위한 ‘도구와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강조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모이는 교회’에서 ‘보냄을 받은 교회’로의 인식 전환입니다. 에클레시아의 본래 의미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지만,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이기도 합니다. 교회의 문을 열고 나가 가정과 일터, 사회 구석구석에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실현하는 ‘일상의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통치로서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막연한 장소가 아니라, 지금 여기(Here and Now) 임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한국 교회는 개인의 복락을 넘어 정의와 평화, 희생과 사랑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사회 전반에 흐르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셋째, 교회의 목적이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목적지가 아니라 표지판입니다. 표지판이 자신을 가리키지 않고 길 끝에 있는 목적지를 가리키듯, 에클레시아는 끊임없이 세상에 바실레이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이 곧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오해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와 소외된 이웃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결론: 다시 복음의 본질로
예수님이 마태복음 16장에서 에클레시아를 언급하신 직후 말씀하신 것은 ‘천국(하나님 나라) 열쇠’였습니다. 교회에 부여된 권위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권위입니다.
한국 교회가 다시 바실레이아의 야성을 회복할 때, 비로소 에클레시아는 생명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건물을 세우는 열정보다 하나님의 통치를 세우는 열정이 앞설 때, 우리 시대의 교회는 다시금 세상의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